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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비상하기 위해서는 상처와 고통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 고경만 (해경, haegyung) · 출처: 브런치 채널 · 최초 발행: 2020-11-08 · 개선 정본 판본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같은 일을 보아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고, 같은 말을 들어도 먼저 반응하는 감정이 다릅니다. 성격을 특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같은 특성이 어떤 상황에서는 장점으로, 다른 상황에서는 단점으로 드러납니다. 장점이 큰 만큼 그 특성이 만든 불편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전혀 부딪히지 않고 사는 일은 어렵습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 사이에도 어긋나는 지점은 생깁니다.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머리와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쪽이 틀려서라기보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말은 세 가지를 함께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첫째, 나를 인정합니다. 내가 무엇에 민감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살핍니다. 둘째, 상대를 인정합니다. 상대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느끼거나 판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셋째, 나와 상대가 함께 있는 관계를 인정합니다. 둘의 차이가 만나는 곳에서는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까지 포함합니다.

나는 적어도 고등학교에서 성격과 서로의 차이를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수업이 갈등을 없애 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설명할 언어를 만날 기회는 될 수 있습니다. 성격에 관한 공부나 검사는 이 차이를 살피는 한 가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Big Five, WPI, MBTI, MMPI 같은 이름을 접할 수 있지만, 검사 결과가 사람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를 본다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결론내리기보다 “이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나”라고 질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검사보다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사건을 적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무엇이 불편했고, 내 몸과 말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기록해 봅니다.

나에게 좋은 특성이 있다고 해서 부족한 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해서 좋은 면까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부분과 내가 줄이고 싶은 부분은 동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완벽한 나를 만들려는 시도는 곧 다시 멈추지만, 두 면을 함께 볼 때 다음 행동을 고를 수 있습니다.

충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일을 없던 것처럼 만들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문제를 계속 부정하면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 알기 어려워집니다. 먼저 “나는 지금 상처받았다”라고 말해 보는 것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표시하는 첫 문장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나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끝내기보다 “그 말이 나에게는 이런 뜻으로 들렸고, 다음에는 이렇게 말해 주면 좋겠다”고 구체화합니다. 동시에 상대가 나를 이해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몰아붙이지 않고, 상대의 설명도 듣습니다. 상대의 설명을 듣는다고 해서 나의 경계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도 각자가 지켜야 할 선은 남습니다.

상처를 인정하라는 말은 상처를 견디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처가 생겼다는 사실을 지우지 말고, 무엇이 달랐는지 살피며 필요한 경계를 세우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를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를 설명하고 조정하려는 노력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웁니다.

상처는 내가 살아 있다는 흔적입니다. 그 흔적을 억지로 아름답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때, 나는 다시 무엇을 선택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인정하는 일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다음 장면에 내가 다시 참여하는 일입니다.

독자의 맥락과 여백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른 당신의 장면은 무엇인가요? 질문과 선택의 맥락을 자기 노트에 기록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