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sign Thinking: 절차를 따라 하는 기술에서, 세상을 드러내며 생각하는 법으로

Ⅰ. 왜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을 배워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가?’
디자인씽킹을 배운다는 사람은 많다. 강의도, 워크숍도, 인증 프로그램도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디자인씽킹을 진짜로 써먹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디자인씽킹을 사용해서 일을 하고 있다. 디자인씽킹 훈련을 받은 전문가와 협업을 하기도 했고, 그가 나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지는 않았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씽킹’ 이라는 것을 익히고 싶어, 강의를 듣거나, 워크숍을 듣고, 인증 프로그램을 수강한다. 하지만, 진짜로 써먹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것 같다. 나는 그 이유가 교육 콘텐츠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들 공감부터 시작해 문제를 정의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토타입을 만든다고 배웠다.
그런데 막상 실제 현장에 가면 그 순서가 전혀 맞지 않다고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 동작하는 전문성은 대부분 선형 프로세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재의 이상적 모델처럼 움직이지 않고, 팀은 “지금 우리는 어느 단계에 있는가?”라는 질문만 반복 할 가능성도 높다.
많은 이들이 그때 느낀다.
“디자인씽킹을 배웠는데, 내 생각은 왜 그대로일까?”
이 질문이 이 글의 시작점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 씽킹’을 삶에서 사용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축약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진짜 익혀야 할 것은 단계가 아니라 사고의 구조이며,
즉, 세상을 보고 해석하고 드러내는 인식의 방식이다.
대부분의 디자인씽킹 교재는 친절하다.
공감(Empathy), 문제 정의(Define), 아이데이션(Ideate), 프로토타입(Prototype), 테스트(Test).
다섯 개 단계를 따라가면 누구나 ‘창의적 문제 해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절차를 아는 것과, 절차를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절차적 사고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반면 인식의 전환은 ‘어떻게 보는가’를 바꾼다.
문제는 대부분의 교육이 전자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디자인씽킹은 종종 ‘도구 상자(toolkit)’로만 소비된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고객 여정을 그리며,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한다.
하지만 그 모든 활동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정답을 찾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틀을 바꾸는 법”은 익히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교육이 외재적 절차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즉, 사고의 결과를 흉내 내게 하지, 사고의 구조를 경험하게 하진 않는다.
인간의 인식은 단계를 따라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감과 정의, 아이디어와 판단, 실험과 피드백을
순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
실제 사고는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얽히고 진동하는 과정이다.
그 복합적 순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디자인씽킹은 언제나 “따라 하는 기술”로만 남는다.
디자인씽킹은 프로세스가 아니라 인식의 구조다.
그 핵심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아니라 ‘세상을 드러내는 법’에 있다.
진짜 디자이너는 단계의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고, 형태로 드러내며, 다시 그것을 통해 생각한다.
디자인씽킹을 ‘단계의 학습’이 아니라 ‘인식의 훈련’으로 바라보는 시각.
즉, Seeing differently의 관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순서가 아니라 감각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아니라, 문제가 어떻게 보이기 시작하는가를 깨닫는 법이다.
그때 비로소, 디자인씽킹은 기술이 아니라 사유의 언어로 다가온다.
✳️ 요약
디자인씽킹은 절차가 아니라 인식의 구조다.
절차를 배우면 문제를 풀 수 있지만, 인식을 바꾸면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Ⅱ. 기존 패러다임 ― ‘절차로 배우는 디자인씽킹’의 한계
디자인씽킹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IDEO와 스탠퍼드 d.school의 공이 크다.
그들은 복잡한 창의 과정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5단계 프로세스’로 구조화했다.
공감(Empathize), 문제 정의(Define), 아이데이션(Ideate), 프로토타입(Prototype), 테스트(Test).
처음엔 혁신적이었다.
“창의성에도 과정이 있다”는 메시지는, 두려움 많던 비전문가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친절한 절차가 디자인씽킹을 ‘사고법’이 아닌 ‘방법론’으로 오해하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프로세스를 외우면 디자이너처럼 사고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1. 절차는 행동을 안내하지만, 사고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
교육심리학에서는 이를 ‘절차적 학습(procedural learning)’이라 부른다.
절차적 학습은 특정한 과업을 빠르고 정확히 수행하게 하지만,
새로운 맥락으로 전이되지 않는다.
John Anderson(1982)은 “절차적 지식은 특정 상황에만 유효하며,
상황이 바뀌면 쉽게 붕괴한다”고 말했다.
Chi & Glaser(1988)는 전문가와 초보자의 차이를 분석하며,
전문가는 절차가 아니라 ‘개념적 구조(conceptual structure)’ 를 습득한 사람이라고 했다.
즉, 절차를 배워도 개념의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사고는 여전히 초보자의 상태에 머문다.
디자인씽킹을 단계로 배운 사람들은
공감의 순서를 알고, 브레인스토밍 도구를 사용하며,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의 ‘보는 법’은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절차가 아니라 인식 구조(perceptual structure) 가 학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디자인 문제는 선형 절차로 정의되지 않는다
디자인 연구자 Richard Buchanan(1992)은 디자인 문제를 “wicked problem”,
즉, 복잡하고 경계가 모호한 문제로 규정했다. 이런 문제는 논리적으로 정의될 수도, 완전히 해결될 수도 없다.
상황 속에서 문제와 해답이 동시에 진화(co-evolution)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교재는 ‘공감→정의→아이데이션’의 순서를 강조한다.
그 결과, 학습자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된 절차에 끼워 맞춘다.
문제를 ‘이해’하기보다 ‘분류’하려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실제 사고는 반대다.
그들은 문제를 정의하기 전에 이미 형태를 떠올리고,
프로토타입을 만들며 다시 문제를 재정의한다.
즉, 디자인은 비선형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인식 행위다.
절차를 따르는 사고로는 그 리듬을 이해할 수 없다.
3. 전문성은 절차가 아니라 ‘상황 인식’에서 나온다
Gary Klein의 자연주의 의사결정(NDM) 연구는 이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여러 대안을 비교하지 않는다.
대신, 상황에서 의미 있는 단서(cue) 를 빠르게 인식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감지한다.
이를 RPD(Recognition-Primed Decision) 모델이라고 부른다.
이 모델에서 ‘직관’은 단순한 감이 아니다.
그건 수천 번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지각적 구조(perceptual schema) 다.
즉, 전문가의 능력은 규칙을 아는 것이 아니라 ‘보는 법’을 바꾸는 것이다.
디자인씽킹의 전문성도 마찬가지다.
공감의 단계가 아니라, 패턴을 인식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사고 구조를 익히는 데서 나온다.
절차적 훈련은 이 감각을 길러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패턴 인식은 맥락과 피드백의 누적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성은 ‘단계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볼 줄 아는 사람’에게서 생긴다.
4. 반성적 실천이 빠진 절차는 공허하다
Donald Schön(1983)은 전문가는
“행동 속에서 사고하며, 사고 속에서 행동한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Reflection-in-Action,
즉, ‘행위 속 반성’이라 불렀다.
디자인씽킹이 단순 절차로 끝나면,
이 반성적 차원이 작동하지 않는다.
공감 단계에서 사용자 조사를 하고,
아이데이션 단계에서 포스트잇을 붙이지만,
그 과정이 자기 인식(self-awareness) 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은 단순한 워크숍일 뿐,
사고의 전환을 일으키는 실천이 아니다.
5. 절차는 필요하지만,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해하면 안 된다.
프로세스는 여전히 유용하다.
문제는 그것이 사고의 결과로서 존재해야지, 사고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디자인씽킹의 단계는 사고를 구조화하기 위한 임시 틀이지,
사고를 대신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니다.
절차를 중심에 두면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순서를 수행한다.
하지만 인식이 중심이 되면, 사람은 절차를 스스로 재구성한다.
그때 비로소 절차는 살아 있는 사고의 리듬으로 작동한다.
✳️ 요약
기존의 디자인씽킹 교육은 절차를 가르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익히게 하지만,
사고의 구조를 다루지 않아 ‘어떻게 보는가’는 바꾸지 못한다.진짜 디자인씽킹은 단계를 따라가는 기술이 아니라,
상황을 보고 패턴을 인식하며 스스로 절차를 재조립하는 인지적 능력이다.
Ⅲ. 인식 전환 ― 디자인씽킹은 ‘보는 법’이다
| 구분 | 기존 관점 (교육·교재 중심) | 이 글의 관점 (인지·리서치 중심) |
|---|---|---|
| 핵심 정의 | 인간 중심의 문제 해결 절차 | 세계를 드러내고 재해석하는 인식 행위 |
| 사고 구조 | 순차적 단계(공감→정의→아이데이션→프로토타입→테스트) | 동시적 인지 요소(관찰·형태화·맥락·피드백)가 공명하며 작동 |
| 전문성 기준 | 프로세스를 얼마나 정확히·효율적으로 수행하는가 | 감각·사고·행동을 실시간으로 조율하며 드러냄을 설계하는 능력 |
| ‘디자인’의 의미 |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적 행위 | 세계의 구조를 보이게 만드는 사고적 장치 |
| 사고의 단위 | Task / Step / Skill | Field / Relation / Resonance (상호작용적 장) |
| ‘보는 법’ | 관찰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 | 관찰을 통해 패턴과 의미를 드러냄 |
| ‘생각하는 법’ |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평가 | 생각을 형태로 드러내고 다시 해석 |
| 시간 구조 | 선형적(iterative, 반복은 있지만 순서 중심) | 동시적(synchronous), 모든 요소가 함께 진동 |
| 피드백의 의미 | 개선을 위한 검증 단계 | 인식의 확장 장치 (피드백이 곧 사고의 재구성) |
| 결과물의 성격 | 완성된 솔루션 | 드러남이 지속되는 구조, 수정 가능한 사유 형태 |
| 대표 은유 | ‘문제 해결 프로세스’ | ‘드러남의 생태계(Cognitive Ecology of Seeing)’ |
우리가 어떤 문제를 ‘본다’고 말할 때, 실제로는 눈이 아니라 마음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눈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해석된 세계, 이미 경험과 언어, 감정으로 구성된 세계를 보고 있다.
디자인씽킹이 말하는 ‘관찰’은 이 단순한 시각적 행위가 아니다.
그건 보는 방식 자체를 훈련하는 일이다.
1. 문제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문제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에게 드러날 때 비로소 존재한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어떤 이는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다른 이는 아무 문제도 보지 못한다.
이 차이는 인지적 프레임(frame) 의 차이다.
디자이너는 세상을 다르게 본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의미를 형성하는가를 본다.
그래서 그들의 관찰은 분석이 아니라 해석이다.
“이건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이건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드러나는 걸까?”로 시작한다.
이것이 디자인씽킹이 말하는 ‘보는 법(seeing)’의 출발점이다.
2. Schön의 통찰 ― 생각은 머릿속이 아니라 ‘보기’ 속에서 일어난다
Donald Schön(1983)은 디자이너를 “행위 속에서 반성하는 사람(reflective practitioner)” 이라고 불렀다.
그는 디자이너의 사고를 “Reflection-in-Action”이라 정의했다.
즉, 디자이너는 보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본다.
그들의 사고는 언어적 논증이 아니라 시각적 상호작용(seeing–moving–seeing again) 의 순환이다.
디자이너는 손으로 스케치하면서, 그 선을 ‘다시 본다’.
그때 떠오르는 새로운 형태가 다음 생각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디자인씽킹에서의 ‘보기’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사고의 작동 방식이다.
사람은 그릴 때 생각한다.
그래서 “그리며 본다(Drawing is seeing)” 는 말이 성립한다.
3. 보는 법을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
Gary Klein의 연구에서 전문가는 상황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다르게 보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RPD 모델에서 전문가의 판단은 여러 대안의 비교가 아니라,
패턴의 ‘즉각적 인식’이다.
이건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는 상황의 구조를 다르게 지각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디자인씽킹의 전문성도 이와 같다.
사람은 공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각을 재구성해야 한다.
‘사용자 중심’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도
사용자의 입장을 대신 느낀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을 사용자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능력을 말한다.
4. 관찰은 수집이 아니라 ‘프레임 전환의 행위’
일반적인 리서치는 데이터를 수집한다.
디자인씽킹의 관찰은 그보다 먼저,
‘무엇을 보려 하는가’를 재정의한다.
이것이 프레임 전환(frame creation) 이다.
Kees Dorst(2011)는 이를 “디자인씽킹의 핵심 기술”이라 불렀다.
그에 따르면 디자이너는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이다.
즉, 보는 틀을 바꾸어 세상을 새롭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프레임이 바뀌면 보이는 세계 자체가 달라진다.
같은 현상이라도 다른 질문을 던지면,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
이것이 디자인씽킹의 진짜 창의성이다.
5. 인식의 훈련 ― Seeing → Framing → Externalizing → Re-seeing
디자인씽킹의 사고는 단선적 흐름이 아니라,
보는 것(Seeing) 에서 출발해
틀을 구성(Framing) 하고,
형태로 드러내(Externalizing) 며,
다시 그것을 다시 본다(Re-seeing) 는 순환이다.
이 순환은 절차가 아니라 리듬이다.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분리되지 않는다.
디자인씽킹을 배운다는 건, 이 리듬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즉, 사고의 흐름이 눈과 손, 언어와 형태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다.
6. 세상을 보는 ‘두 개의 시선’
기존의 사고는 세상을 ‘문제의 대상’ 으로 본다.
디자인씽킹은 세상을 ‘드러남의 장’ 으로 본다.
전자는 해결해야 할 대상을 찾지만,
후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찾는다.
그래서 디자인씽킹은 사물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드러내는 기술이다.
“보는 법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이 단순한 문장이
디자인씽킹의 인식론적 핵심을 말해준다.
✳️ 요약
- 디자인씽킹은 절차가 아니라 보는 법의 훈련이다.
- 보는 법이란, 현상 속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구조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 디자이너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사람이다.
Ⅳ. 사고의 구조 ― RPD(Recognition-Primed Decision)로 보는 디자인 사고
디자인씽킹을 이해하려면 “사람은 어떻게 판단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 질문에 가장 깊이 다가간 연구가 자연주의 의사결정(Naturalistic Decision Making, NDM) 과 그 핵심 모델인 RPD(Recognition-Primed Decision) 이다.
이 접근은 전문가들이 실제 현장에서 복잡하고 시간 압박이 큰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를 연구했다.
소방관, 파일럿, 외과의사, 군 지휘관—그들은 매뉴얼을 참조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상황을 읽고, 머릿속에서 가능한 결과를 ‘시뮬레이션’한 뒤 바로 행동한다.
그들은 절차를 따르지 않고, 패턴을 인식한다.
1. RPD 모델의 세 단계
Gary Klein은 전문가의 사고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1️⃣ Recognition — 패턴 인식
경험 많은 사람은 상황을 보자마자 “이건 전에 봤던 유형”이라고 느낀다.
수많은 경험이 만들어낸 지각적 스키마(perceptual schema) 가 즉시 작동한다.
2️⃣ Diagnosis — 맥락 해석
같은 유형이라도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안다.
그래서 “지금 이건 그때와 어떻게 다른가?”를 빠르게 진단한다.
3️⃣ Mental Simulation — 내적 시뮬레이션
그는 머릿속에서 가능한 행동을 미리 돌려본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예상치가 맞는다고 느껴지면 바로 실행한다.
이 전 과정은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안에는 수년간의 훈련과 경험이 내재되어 있다.
2. RPD와 디자인씽킹의 평행 구조
디자이너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사고한다.
그들은 문제를 분석하기보다 패턴을 인식하고,
분석표보다 형태와 맥락을 읽는다.
| RPD 단계 | 디자이너의 사고 과정 | 결과 |
|---|---|---|
| Recognition | 현상 속 단서와 감각적 패턴을 포착 | “무엇이 문제인지”가 드러남 |
| Diagnosis | 맥락적 의미를 재해석, 프레임 전환 |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이해 |
| Simulation | 스케치·프로토타입으로 시뮬레이션 | “이렇게 바꾼다면?” 실험 |
즉, 디자인씽킹은 RPD의 인식 구조를 시각화한 형태다.
프로토타이핑은 단순한 시제품 제작이 아니라,
사고를 외부에서 실험하는 인지적 시뮬레이션 장치인 셈이다.
3. 익힌다는 것은 ‘사고의 구조가 바뀌는 것’
전문가의 직관은 감이 아니다.
그건 반복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패턴 인식 체계다.
RPD의 본질은 ‘빠른 판단’이 아니라
상황을 구성하는 단서를 다르게 보는 눈이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씽킹을 ‘익힌다’는 의미다.
공감과 아이데이션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서 의미를 인식하고 예측하는 사고 구조를 재조직하는 훈련이다.
즉, 단계가 아니라 지각-사고-행동이 한 몸처럼 작동하는 인지적 전환이다.
“Experts don’t see more things; they see more meaning.” — Gary Klein
사고의 구조가 바뀌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가 보이는 방식 자체가 바뀐다.
4. 절차에서 패턴으로, 분석에서 시뮬레이션으로
기존의 디자인씽킹 교육은 문제를 분석하고 단계별로 전개하는 법을 가르친다.
RPD 관점에서 보면, 이는 초보자 단계에 해당한다.
전문가로 성장하려면 패턴 감지와 시뮬레이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디자인씽킹의 진짜 힘은 이 지점에서 나온다.
디자이너는 상황을 빠르게 모델링하고,
모델을 통해 사고를 실험한다.
즉, 디자인은 시각적 언어로 사고를 시뮬레이션하는 행위다.
스케치는 손의 움직임이 아니라
생각의 실험이다.
5. 직관은 훈련 가능한 인지적 기술이다
RPD는 직관을 신비로운 능력이 아니라 훈련 가능한 기술로 본다.
반복적 경험과 피드백을 통해
사람은 단서를 구별하고 패턴을 축적하며,
그 패턴을 바탕으로 더 빠르고 정교한 판단을 한다.
디자인씽킹도 마찬가지다.
공감 훈련, 현장 관찰, 프로토타입 반복은
모두 직관의 구조를 조정하는 경험적 피드백 장치다.
따라서 디자인씽킹의 전문성은
‘창의적 아이디어 능력’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직관을 구조화하는 인식 훈련이다.
✳️ 요약
- RPD는 디자인씽킹의 인지적 모델이다.
- 전문가의 사고는 절차가 아니라 패턴 인식–맥락 해석–시뮬레이션으로 작동한다.
- 디자인씽킹을 익힌다는 것은 이 사고 구조를 체화해 “다르게 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 절차를 배우면 손이 움직이지만, 구조를 익히면 생각이 움직인다.
Ⅴ. 드러냄의 사고 ― 이미지와 언어, 그리고 형태화
사람은 생각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디자이너는 생각을 보이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씽킹의 핵심이자, 다른 사고법과의 근본적 차이다.
디자이너에게 사고란 머릿속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드러나는 행위다.
1. 형태화(Form-Giving)는 사고의 도구다
“생각을 시각화한다”는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 그린다.
Donald Schön(1983)은 이를 “Drawing as a conversation with the situation”이라 표현했다.
디자이너는 선을 긋고, 그 선이 만들어낸 형태를 다시 보며 새로운 생각을 얻는다.
즉, 손의 움직임이 사고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때 스케치, 다이어그램, 프로토타입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의 매개체(cognitive artifact) 다.
형태화는 생각을 고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장치다.
2. 이미지는 시각적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지’라는 단어는 흔히 그림이나 시각적 형태를 의미하지만,
인지과학에서의 이미지는 훨씬 넓다.
언어, 은유, 서사, 제스처, 감각적 비유—all are images.
사람은 생각할 때 언어를 사용하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감각적 장면을 시뮬레이션한다.
이걸 심상(mental imagery) 라 부른다.
Barsalou(2008)는 “언어는 감각 시뮬레이터(simulator)”라고 했다.
즉, 우리가 “차가운 표정”이라는 말을 들을 때,
뇌는 실제로 온도와 표정과 감정에 관련된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한다.
따라서 언어 또한 형태의 한 방식이다.
디자인씽킹에서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고를 ‘보이게’ 하는 또 다른 이미지화 도구다.
3. 말과 형태, 감각이 동시에 사고를 만든다
디자이너는 말하고, 손으로 그리고, 몸으로 설명한다.
이 세 가지는 분리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사람과 달리,
디자이너는 감각-언어-행동의 통합적 리듬으로 사고한다.
이건 단순한 표현 습관이 아니라,
Embodied Cognition(체화된 인지) 의 결과다.
사고는 뇌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몸과 환경, 그리고 행위의 흐름 속에서 구성된다.
따라서 디자인씽킹의 ‘형태화’란
손의 움직임과 언어의 리듬, 시선의 방향이 하나의 인지적 행위로 묶이는 과정이다.
그 순간, 생각은 물리적 세계에 ‘자리’를 얻는다.
4. 프로토타입은 생각을 실험하는 장치다
많은 사람이 프로토타입을 “시제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디자인 관점에서 그것은 사고의 실험 장치다.
아이디어를 실제 형태로 옮기면,
우리는 그것을 보고, 만지고,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즉, 프로토타입은 피드백 가능한 사고의 물질적 표현이다.
디자인의 본질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형태를 통해 사고가 순환하도록 만드는 피드백 구조다.
이것이 “디자인은 완성이 아니라 수정 가능한 구조”라는 말의 이유다.
5. 형태화는 세상을 다시 읽게 한다
형태는 생각의 흔적이자, 새로운 관찰의 창이다.
디자이너는 형태를 만들고, 그 형태를 다시 본다.
이때 일어나는 것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재인식(re-seeing) 이다.
형태화된 생각은 새로운 질문을 낳고,
그 질문이 다시 형태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디자인씽킹에서 형태화는
내면의 심상을 외부 세계로 번역하는 언어이자,
다시 그 세계를 인식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6. 언어와 형태의 공진 ― ‘보이는 언어, 말하는 이미지’
디자인씽킹의 전문가는 시각 언어와 말의 언어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을 이미지처럼 다루고, 이미지를 언어처럼 조합한다.
이 두 언어가 공진할 때, 사고는 가장 풍부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좋은 디자이너는 종종 시인이며,
좋은 시인은 이미 디자이너다.
둘 다 보이지 않는 것을 형태로 만들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요약
- 형태화(Form-giving)는 생각을 밖으로 꺼내 사고를 실험하게 하는 인지적 장치다.
- 언어 또한 이미지이며, 디자인씽킹에서 말하기는 사고를 ‘보이게’ 하는 행위다.
- 프로토타입은 완성품이 아니라 피드백 가능한 사고의 물질화다.
- 따라서 디자인은 사물의 설계가 아니라 사유가 드러나는 구조의 설계다.
Ⅵ. 전문성 ― 인지 공명(Cognitive Resonance)으로서의 디자인씽킹
전문가의 사고를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분석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하나씩 차례로 이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거의 동시적으로 진동한다.
디자인씽킹의 전문성도 그렇다.
공감, 관찰, 아이디어, 형태, 피드백이라는 단어가 마치 순서처럼 보이지만,
실제 디자이너의 사고 속에서는 이들이 순간적인 리듬 속에서 얽혀 작동한다.
1. 사고는 단계가 아니라 ‘리듬’이다
우리가 사고를 단계로 이해하는 것은
교육의 편의를 위한 단순화일 뿐이다.
현실의 인식은 훨씬 더 역동적이다.
디자이너는 관찰하면서 동시에 해석한다.
형태를 만들면서 다시 문제를 본다.
피드백을 받으며 이미 다음 아이디어를 시뮬레이션한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보기–생각–행동–수정”이 한 덩어리로 울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지 공명(cognitive resonance) 이다.
각 인지 요소가 따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자극하며 한 리듬 안에서 진동한다.
2. 인지 공명의 다섯 축
이 리듬은 다섯 가지 요소가 서로 얽혀 만들어낸다.
1️⃣ 관찰(Observation) – 현상 속 단서를 감각적으로 포착
2️⃣ 맥락 해석(Contextual Interpretation) – 단서의 의미를 재구성
3️⃣ 형태화(Form-Giving) – 생각을 외부 형태로 드러냄
4️⃣ 패턴 감각(Pattern Sense) – 반복과 차이의 구조를 인식
5️⃣ 피드백 반성(Feedback Reflection) – 드러난 결과를 다시 사고로 환류
이 다섯 요소는 순서가 아니라 동시적 상호작용으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관찰이 맥락 해석을 자극하고,
형태화가 새로운 패턴 인식을 유도하며,
피드백이 다시 관찰을 바꾼다.
이 상호자극의 네트워크가 바로 전문성의 작동 방식이다.
3. Schön과 Cross가 말한 ‘생각의 리듬’
Donald Schön은 전문가의 사고를 “행위 속 반성(reflection-in-action)”이라고 했다.
Nigel Cross는 디자이너의 사고를 “seeing–moving–seeing again”의 반복으로 정의했다.
둘 다 공통적으로 말한다.
사고는 순차적 단계를 밟는 게 아니라, 리듬으로 흐른다.
그 리듬 속에서는 관찰이 사고를 열고,
행동이 사고를 닫지 않으며,
하나의 움직임이 다음 움직임을 예비한다.
디자인씽킹의 전문성은 바로 이 리듬을 감각적으로 조율하는 능력이다.
4. 공명(resonance)은 조율(harmony)의 상태다
공명이란 단순히 여러 요소가 함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의 진동이 맞물려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내는 상태다.
디자인씽킹의 전문성은 바로 이 조율감이다.
좋은 디자이너는
관찰의 초점, 언어의 톤, 형태의 크기, 피드백의 흐름이
모두 하나의 주파수로 맞춰져 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의도된 구성’이기 전에
사고의 조화(harmonic thinking)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5. 전문성은 리듬을 익히는 감각이다
초보자는 단계별 절차를 따라간다.
전문가는 리듬을 느낀다.
그 차이는 단순히 경험의 양이 아니라,
감각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감각은 훈련을 통해 형성된다.
반복된 시도와 피드백 속에서
디자이너는 각 인지 요소의 타이밍과 강도를 조율하는 법을 배운다.
그 결과, 사고는 더 이상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흐름(flow) 으로 작동한다.
이 리듬은 음악과도 같다.
악보가 없어도, 손과 귀와 몸이 동시에 움직인다.
디자인씽킹의 전문성도 그와 같다.
절차를 외우지 않아도, 사고와 감각이 함께 움직이는 상태.
그것이 바로 인지 공명이다.
6. 절차의 숙련에서 리듬의 체화로
결국 디자인씽킹의 성장은
‘단계를 정확히 수행하는 능력’에서
‘사고의 리듬을 체화한 감각’으로 이동한다.
그 감각이 생기면,
새로운 상황에서도 즉시 조율할 수 있다.
이것이 전문성의 본질이다.
절차는 외재적이지만,
리듬은 내재적이다.
리듬이 생기면, 절차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러나 절차만 배우면, 리듬은 영원히 생기지 않는다.
✳️ 요약
- 디자인씽킹의 전문성은 단계의 숙련이 아니라, 인지적 리듬의 조율 능력이다.
- 관찰, 맥락 해석, 형태화, 패턴 인식, 피드백이 동시에 공명하며 작동한다.
- 전문가는 이 다층적 인지 활동을 하나의 리듬으로 체화한다.
- 따라서 디자인씽킹은 절차가 아니라 공명과 조화의 기술,
즉 사고의 리듬을 다루는 예술이다.
Ⅶ. 리서치 마인드와 현장 감각 ― 디자인의 생태적 인식
디자인씽킹의 진짜 무대는 회의실이 아니라 현장이다.
디자인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사람이 살아가는 맥락, 물질이 존재하는 환경,
시간이 흐르는 상황 속에서 드러난다.
디자이너가 연구자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단순히 관찰하기 위해 현장에 가지 않는다.
그곳에서 자신의 인식이 흔들리는 지점을 만나기 위해 간다.
이것이 리서치 마인드의 본질이다.
1. 현장은 데이터가 아니라 ‘의미의 장(場)’이다
많은 사람은 현장을 ‘정보를 얻는 곳’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현장은 세계가 드러나는 살아 있는 장(場)이다.
관찰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의미의 발생을 목격하는 행위다.
누군가가 물건을 사용하는 방식, 말하지 않은 표정,
공간의 흐름, 빛의 방향, 소리의 질감—
이 모든 것이 설계의 단서가 된다.
이 단서들은 단편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맥락적 관계의 흔적(trace of relationship) 이다.
따라서 디자인 리서치는 사실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패턴을 감지하는 훈련이다.
2. 관찰된 정보는 관찰자의 구조를 반영한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믿지만,
실은 우리가 가진 언어, 문화, 경험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틀을 씌운다.
이것이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 이다.
디자이너가 현장을 해석할 때,
그의 시선은 이미 자신이 가진 세계관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진정한 리서치 마인드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뿐 아니라
‘나는 왜 그렇게 보고 있는가’를 함께 질문하는 태도다.
관찰자는 대상의 일부이며,
그가 세상을 해석하는 동시에
세상 역시 그를 변화시킨다.
이것이 디자인의 생태적 인식(Ecological Cognition) 이다.
3. 리서치는 ‘드러남’을 돕는 행위다
리서치 마인드는 세상을 통제하거나 예측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돕는 태도에 가깝다.
디자이너는 “무엇이 옳은가?”보다
“무엇이 드러나려 하는가?”에 귀 기울인다.
그래서 질문은 분석이 아니라 초대(invitation) 다.
“이 상황은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이 태도 속에서 디자이너는 세계의 관찰자이자 동반자다.
그는 현상을 조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드러남을 함께 만드는 공동 행위자(co-participant) 다.
4. 패턴을 찾는다는 것은 ‘맥락을 읽는 능력’이다
리서치는 패턴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패턴은 통계적 반복이 아니다.
그건 맥락적 공명(contextual resonance) 의 감지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어떤 서비스에서 불편을 겪을 때,
그 불편은 단지 기능적 문제가 아니라
환경·관계·시간·감정의 교차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디자이너는 그 사건을 하나의 생태계로 읽는다.
이때 전문성은 데이터를 해석하는 분석력이 아니라,
맥락의 진동을 감지하는 감각적 직관이다.
이 감각은 숫자보다 관계를 보고,
현상보다 구조를 느낀다.
5. 생태적 인식 ― 디자이너와 세계는 서로를 만든다
디자인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생태적(Ecological) 이다.
즉, 인간과 환경이 분리되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환경을 관찰하는 동시에
자신의 인식 구조를 재조정하며,
그 과정 속에서 자신과 세계가 동시에 변화한다.
James Gibson의 생태심리학은 이를 “직접적 지각(Direct Perception)”이라 불렀다.
사람은 환경 속에서 의미를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직접 감각하며 반응한다.
디자이너의 관찰도 그렇다.
그는 데이터를 해석하지 않고,
맥락 속에서 관계를 체험한다.
그래서 디자인씽킹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사유하는 방법이다.
6. 리서치 마인드의 핵심은 ‘겸손한 감각’이다
디자인 리서치는 발견의 기술이 아니라
겸손의 기술이다.
세계는 이미 충분히 풍부하고,
디자이너는 단지 그것이 드러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 감각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세계 위에 덧씌우지 않는다.
대신 세계가 자신 안에 말을 걸게 둔다.
그 순간, 진짜 통찰이 발생한다.
✳️ 요약
- 현장은 데이터가 아니라 의미의 장이다.
- 관찰된 정보는 관찰자의 구조를 반영하며, 디자이너는 세계의 일부다.
- 리서치 마인드는 세상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돕는 태도이며,
관찰자와 세계가 상호 진화하는 생태적 인식 구조다.- 디자인씽킹의 전문성은 이 현장 감각—
세상과 함께 사유하는 리듬—을 익히는 데 있다.
Ⅷ. 피드백 가능한 세계 ― 디자인의 존재론
디자인은 완성을 향하지 않는다.
좋은 디자이너일수록 “이제 끝났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이건 아직 살아 있다.”
디자인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단지 사물의 형태나 기능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과 세계가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피드백이 가능한 구조를 설계하는 행위다.
1. 완성보다 ‘수정 가능성’을 설계한다
전통적인 사고는 디자인을 ‘최적의 해답’을 찾는 일로 본다.
하지만 세계는 고정되지 않는다.
사용자는 변하고, 기술은 진화하며, 사회적 맥락은 끊임없이 달라진다.
따라서 진짜 디자이너는 변화에 반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즉, 완결된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시스템(Open System) 을 설계한다.
Herbert Simon은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에서 말했다.
“디자인은 제약 조건 속에서 가능한 변형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이 말은 곧, 디자인의 본질이 결정이 아니라 변형(transformation) 임을 의미한다.
디자인씽킹은 그 변형이 일어나도록 피드백을 구조화하는 사고의 방식이다.
2. 프로토타입은 ‘대화의 언어’다
프로토타입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건 세계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다.
형태가 존재해야 세계가 반응하고,
반응이 있어야 사고가 다시 움직인다.
즉, 프로토타입은 생각과 세계가 서로에게 말을 거는 장치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관찰자이자 대화자다.
그는 세계의 반응을 듣고, 그 반응을 다시 형태로 번역한다.
이것이 디자인이 “실험(Experimentation)”이자 동시에 “대화(Dialogue)”인 이유다.
3. 피드백은 평가가 아니라 순환이다
많은 사람은 피드백을 ‘평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자인에서의 피드백은 순환(circulation) 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이 발생하는 흐름이다.
하나의 형태가 세상에 던져지면,
사용자와 환경은 반응한다.
그 반응이 다시 형태를 바꾸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순환이 끊어지지 않을 때,
디자인은 ‘살아 있는 시스템’이 된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일은 결과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이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일,
즉 세계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4. 디자인은 ‘학습 가능한 세계’를 만든다
우리가 만든 제품, 서비스, 공간, 제도는 결국 인간과 세계가 상호 학습하는 인터페이스다.
좋은 디자인일수록 그 인터페이스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남긴다.
사용자는 그 안에서 스스로 배우고,
세계는 그 사용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한다.
디자인씽킹은 바로 이 ‘학습 가능한 세계’를 설계한다.
즉, 인간과 세계가 서로의 반응을 읽고
다시 자신을 바꾸는 지속적 피드백 루프를 만드는 사고 체계다.
“디자인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학습이 일어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5. 반성(reflection)은 피드백의 내면적 형태다
외부의 피드백이 형태를 바꾼다면,
내부의 피드백은 사고를 바꾼다.
디자이너의 반성은 자신의 판단과 감각을
다시 세계와 연결하는 내적 순환이다.
Schön이 말한 “Reflection-in-Action”은
단지 자기 성찰이 아니라 세계와의 공진을 유지하는 내면의 리듬이다.
디자인의 전문성은 이 리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반응하는 감각에서 생긴다.
6. 디자인의 존재론 ― 드러남과 순환의 철학
결국 디자인은 드러남(revelation) 의 예술이자
순환(recirculation) 의 철학이다.
디자이너는 세상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스스로 드러나고 변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세상은 언제나 미완이다.
그 미완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변화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짜는 일—
그것이 디자인의 존재 방식이다.
디자인은 세상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 리듬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 요약
- 디자인은 완성이 아니라 순환이다.
- 프로토타입은 결과가 아니라 세계와의 대화 장치다.
- 피드백은 평가가 아니라 새로운 인식이 발생하는 흐름이다.
- 디자인씽킹은 인간과 세계가 서로 학습하는 피드백 가능한 세계를 설계한다.
- 따라서 디자인의 존재론은 드러남과 순환의 철학,
즉 “살아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Ⅸ. 학습으로서의 디자인씽킹 ― 사고의 리듬을 익히는 법
디자인씽킹을 안다는 것과
디자인씽킹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개념의 습득이지만, 후자는 감각의 체화다.
우리가 이 책의 여정을 따라오며 본 것처럼,
디자인씽킹은 절차가 아니라 인식의 리듬이다.
따라서 그것을 배운다는 건,
‘지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각과 사고의 타이밍을 재조율하는 일이다.
1. 절차적 학습에서 구조적 학습으로
전통적인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단계, 규칙, 도구, 방법론이 주어지고
학생은 그것을 반복하며 숙련도를 높인다.
이건 절차적 학습(procedural learning) 이다.
하지만 디자인씽킹은 다르다.
그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무엇이 보이는가’를 바꾸는 학습이다.
즉, 인지 구조(cognitive structure) 를 재편하는 일이다.
John Anderson은 “절차를 배운 사람은 같은 문제만 풀 수 있지만,
구조를 배운 사람은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재구성한다”고 했다.
디자인씽킹의 학습은 바로 이 두 번째 방식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문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
2. 익힌다는 것은 감각이 정밀해지는 과정이다
Gary Klein은 RPD 모델을 통해
전문가는 더 많은 정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더 정밀하게 ‘보는 법’을 익힌 사람이라고 했다.
디자인씽킹도 마찬가지다.
반복된 관찰과 프로토타이핑, 피드백 경험을 통해
디자이너의 감각은 점점 세밀해진다.
이 감각은 분석이 아니라 조율의 능력이다.
어떤 타이밍에 문제를 멈추고,
언제 형태를 드러내며,
언제 다시 피드백을 받을지를 감으로 아는 것이다.
결국 학습은 머리가 아니라 몸의 타이밍을 바꾸는 일이다.
디자인씽킹의 전문가는 사고를 ‘한다’기보다,
사고의 리듬 속에서 ‘산다’.
3. 반성적 실천 ― 생각과 행동이 하나로 엮이는 훈련
Schön은 “전문가는 행위 속에서 사고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곧 학습이 실천 속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디자인씽킹을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훈련은
‘생각하기 전에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면 생각이 따라온다.
말하면 생각이 정리된다.
이건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와 표현이 서로를 만드는 인지적 순환이다.
그래서 디자인씽킹의 학습은 이론 공부보다
작은 실험을 자주 하는 데 있다.
그 실험이 새로운 관찰을 낳고,
그 관찰이 다시 사고를 재구성한다.
이 순환이 반복될 때 사고의 구조가 바뀐다.
4. 실패는 피드백의 한 형태다
좋은 학습은 완벽한 성공보다
풍부한 실패 경험을 포함한다.
실패는 오류가 아니라 즉각적인 피드백의 언어다.
무언가가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그 틈에서 사고의 패턴이 드러난다.
디자인씽킹은 실패를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프로토타입이 망가질수록
사람은 더 정확히 세계의 반응을 듣는다.
그 과정에서 인식은 다듬어지고,
감각은 정밀해진다.
5. 학습은 리듬의 감각을 익히는 일
디자인씽킹의 학습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배운다”는 것은 생각의 리듬을 익히는 일이다.
초보자는 절차를 따라가며 리듬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반복과 피드백 속에서
그 리듬이 몸에 스며들면,
더 이상 순서를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때부터 사고는 흐름(flow) 속에 있다.
관찰과 해석, 형태화와 피드백이 동시에 울린다.
그 순간, 디자인씽킹은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된다.
6. 디자인씽킹은 지식을 늘리는 학문이 아니라 인식을 재구성하는 훈련이다
이제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
디자인씽킹을 배워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절차를 외우기만 하고
인식을 재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자인씽킹의 학습은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는 것’.
‘문제를 푸는 법’을 익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드러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관찰하고,
드러내고,
되돌아보며,
다시 리듬을 맞추는 끝없는 순환이다.
✳️ 요약
- 디자인씽킹의 학습은 절차적 숙련이 아니라 인지 구조의 전환이다.
- 배우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보이는가’다.
- 학습은 몸의 타이밍, 감각의 리듬을 재조율하는 과정이다.
- 실패는 오류가 아니라 피드백이며, 피드백은 사고를 다시 진동시키는 리듬이다.
- 디자인씽킹은 지식을 쌓는 것이라기 보다는, 인식을 새롭게 구성하는 삶의 훈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