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저녁이면 커먼즈 펍에 간다. 2018년 4월의 마지막 날에도 그 자리에 갔다. 이번 주제는 “음악 산업과 창작자”였다.
윤종수 변호사는 이번 커먼즈 펍이 징수 규정에 대한 이야기를 계기로 마련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래퍼 MC 메타와 래퍼 출신 업계 종사자인 신권웅 씨였다. 지난달의 커먼즈 펍이 정보를 넓게 소개하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시간은 내게 한 편의 감상문에 가까웠다.
2014년 무렵 일하던 곳에서 음악을 하는 분을 만났다. 그분의 공연에 가고 동료들도 만났다. 그 뒤로 내 안에 질문 하나가 남았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번 커먼즈 펍은 그 질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음악가에게 돌아가는 몫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생각이었다. 실연자 단체가 기획사를 견제해야 하는 현실, 음악가가 음악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현실이 함께 언급되었다. 이 대목은 행사에서 들은 이야기와 내가 이해한 범위를 구분해 적어 두어야 한다. 당시의 발언만으로 지금의 전체 음악 시장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도 한 문장은 오래 남았다.
“저는 힙합 전사가 되고 싶었지만 하하하하.”
MC 메타의 이 말에는 웃음과 생활의 고단함이 같이 있었다.
음악가는 농부라는 비유도 나왔다. 어떻게 하면 좋은 쌀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는 농부. 그런데 음악을 경제적 관점과 사업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어떻게 싸게 만들어 비싸게 팔지 찾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음악가는 자신이 만든 쌀이 가치 있게 팔리기를 원한다. 수익보다 가치가 먼저라는 뜻이다.
“아티스트를 설득하려면, 작품이 얼마나 가치 있게 소비되는지를 중심으로 설득하라.”
이 말은 음악 서비스 사업자에게도 중요한 기준처럼 들렸다. 돈이나 수입을 먼저 보여 주는 것보다,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들리고 기억되는지를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사업도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돈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기름이나 혈액에 가깝다. 그런데 음악가를 둘러싼 현실에서는 가치와 돈이 서로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음악가는 존재감을 느끼기 어렵고, 시장은 인기와 자본이 몰리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 이 판단은 당시 행사에서 들은 발언과 내 해석이 섞인 것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서 바라봐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반을 살 때 무엇을 산 것일까. 나는 음반을 샀다. CD를 산 것일까?
나는 장나라의 음반을 샀다. CD를 산 것일까? 나는 CD가 주는 다른 무언가를 샀다고 생각한다. 장나라를 좋아하는 내 욕구를 충족할 무언가, 장나라의 팬이라는 정체성과 존재감을 확장할 무언가를 산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앞서 쓴 ‘소비에 대하여’와도 이어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노래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소비한다. 그런데 그 음악을 만든 사람에게 적절한 보답을 하고 있는지는 별도의 질문이다.
뮤지션 친구에게 시장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지금의 주류 음악을 “소비성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말초적’이라는 말을 썼을 때 그 말은 정확하지 않다고도 했다. 두 단어의 이미지가 다르다는 지적이었다.
그 친구는 플랫폼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대중은 믿고 있었다. 플랫폼이 음원을 무작위로 보여 준다면, 대중은 소비성 음악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날 만난 음악가들은 순박해 보였다. 조금 과장하면 철이 덜 든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을 믿었고 음악을 믿었다. 그들에게 사람과 음악은 그런 존재였다.
우리는 음악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을까. 음악을 들으며 얼마나 감사해하고, 그에 맞는 보답을 하고 있을까.
이번 주에 한 곡을 고르고, 누가 만들었는지 확인해 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 음악을 배경음으로만 흘려보냈는지, 작품에 값을 지불했는지 돌아볼 수 있다. 이어서 창작자가 정당하게 인정받을 길을 선택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음악가, 사업가, 대중,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