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글레드웰의 『다윗과 골리앗』 머리말을 읽다가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강함과 약함을 얼마나 쉽게 오해하는지 말하는 대목이었다.
그 설명을 사실의 기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따로 살펴볼 일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가 어디까지 확인된 사실인지, 저자의 해석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는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그 판단을 잠시 미뤄 두고 읽었을 때, 저자가 건넨 질문은 분명히 내게 닿았다. 내가 강점과 약점을 너무 익숙한 기준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은 사실만 담는 그릇이 아니다. 그렇다고 공감이 사실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일과 저자가 왜 이 이야기를 골랐는지 헤아리는 일은 서로 다른 읽기다. 둘 중 하나를 버릴 필요는 없다.
문장을 읽다 보면 우리는 쉽게 잘게 쪼개는 쪽으로 기운다. 표현이 너무 강한지, 단어가 정확한지, 맞춤법이 맞는지 살핀다. 모두 필요한 일이다. 다만 그 일에만 몰두하면 정작 글쓴이가 무엇을 보았고 왜 이 말을 꺼냈는지는 듣지 못할 수 있다. 문장의 흠을 찾았다는 이유로 대화 전체가 끝나 버리는 것이다.
반대도 경계해야 한다. 마음에 와닿았다는 이유만으로 글의 주장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게 필요한 읽기는 아마 두 문장을 함께 붙드는 일에 가깝다.
이 주장은 사실인가.
그리고 이 사람은 왜 이 말을 내게 건네는가.
첫 번째 질문은 글의 바닥을 확인한다. 두 번째 질문은 단어와 문장 사이에 놓인 경험과 의도를 듣게 한다. 바닥이 약하면 의심할 수 있고, 해석이 낯설면 잠시 머물러 볼 수 있다. 확인과 이해는 서로 싸우는 일이 아니다.
예전에 한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참고할 만한 좋은 부분을 들으라고. 틀린 내용이나 흠에만 매달리면 쓸데없이 싸우기 쉽다고.
이 말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 흠을 못 본 척하라는 뜻이 아니다. 흠을 확인한 뒤에도 남아 있는 질문을 들어 보라는 뜻에 가깝다. 책은 정답지를 검사하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의 경험과 내 경험이 한동안 마주 앉는 대화다. 의미는 그 대화의 맥락에서 태어난다.